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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울 요제프 괴벨스는 독일 나치 정권의 정치 관료. 나치 정권의 대중 선동선전을 담당하여 대활약을 했다. 독일 국민들이 나치 정권을 호의적으로 받아들이게 된 것은 주로 그의 헌신 때문인 것으로 믿어지고 있다. 제1차 세계대전 때 괴벨스는 다리가 굽었기 때문에 병역에서 면제되었는데, 이는 그에게 강렬한 보상심리를 유발함으로써 불운한 인생의 불씨가 되었다. 1922년 하이델베르크대학교에서 독일문헌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문학·연극·언론계에서 거의 무보수로 활동하고 있던 그를 히틀러가 베를린지구당 위원장에 임명하면서 나치당에 입당했다. 곧 국가선전기구를 장악하고, 최후까지 히틀러를 보좌했다.

     

     

    파울 요제프 괴벨스의 타임지 표지

     

    선전선동의 귀재, 파울 요제프 괴벨스: 나치즘의 어두운 그림자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난 파울 요제프 괴벨스는 다섯 남매 중 셋째로, 아버지의 헌신적인 지원 아래 학업을 이어갔다. 그러나 유년 시절 앓았던 질병으로 인해 다리가 굽는 장애를 얻게 되었고, 이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군 면제로 이어져 평생의 콤플렉스로 자리 잡았다. 괴벨스의 정적들은 이를 악마의 갈라진 발톱과 절뚝이는 걸음걸이에 비유하며 조롱하기도 했지만, 이러한 신체적 결함은 오히려 그의 정치적 야망을 부채질하는 불씨가 되었다.

     

    하이델베르크대학교에서 독일문헌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괴벨스는 문학, 연극, 언론계에 몸담으며 당시 독일 사회를 휩쓸었던 민족주의 열풍에 깊이 공감했다. 그는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사상에도 관심을 보였지만, 결국 아돌프 히틀러의 카리스마와 나치즘의 강력한 메시지에 매료되어 나치당에 입당하게 된다.

     

    괴벨스는 천부적인 웅변술과 선동 능력으로 히틀러의 총통 신화를 창조하고 대중을 선동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그의 연설은 탁월한 언변과 극적인 연출, 그리고 대중의 심리를 파고드는 메시지로 가득 차 있었으며, 이는 독일 국민들을 나치즘의 광기에 빠져들게 하는 강력한 무기가 되었다.

     

    대중선동의 심리학

     

     

    대중 선동의 심리학 도서를 보면 그는 일기와 그가 쓴 소설, 연설문 등 방대한 자료를 해석해서 쓴 괴벨스의 심리학 책에 해당한다. 절믕 시절 레닌의 러시아 혁명에 열광한 사회주의자가 어떻게 극단적인 나치주의자가 되었는지 잘 나타내고 있는 내용이 담겨져 있다. 특히 실존적 고통과 번민을 포착해 그의 행동을 야기한 심리적인 집요함이 잘 나타내고 있다. 

     

     

    앞부분 13페이지 미리 보기를 통해 괴벨스가 어떻게 히틀러 신화의 창조자가 되었는지 예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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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치당이 집권한 후, 괴벨스는 국가선전부 장관으로 임명되어 언론, 연극, 영화, 문학, 음악, 미술 등 모든 문화 예술 분야를 통제하며 나치즘을 전파하는 데 앞장섰다. 그는 라디오, 영화 등 새로운 매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반유대주의, 전체주의, 군국주의 등 나치즘의 핵심 이념을 효과적으로 주입시켰다.

     

    그러나 괴벨스의 권력은 1937년 체코슬로바키아 출신 여배우 리다 바로바와의 스캔들로 인해 잠시 흔들리기도 했다. 이 사건은 그의 가정생활뿐 아니라 정치적 입지에도 타격을 입혔지만, 제2차 세계대전의 발발과 함께 괴벨스는 다시금 자신의 진가를 발휘하게 된다.

     

    전쟁 초기에는 독일군의 승리가 이어졌지만, 스탈린그라드 전투와 북아프리카 전선에서의 패배로 전세가 역전되자 괴벨스는 더욱 적극적으로 선전 활동에 나섰다. 그는 탁월한 언변과 왜곡된 정보를 통해 패배주의를 극복하고 국민들의 사기를 진작시키는 데 힘썼으며, 총력전 체제를 구축하여 전쟁 수행에 필요한 모든 자원을 동원하는 데 앞장섰다.

     

    1944년 7월 20일, 히틀러 암살 미수 사건 이후 괴벨스는 히틀러의 최측근으로 부상하며 총력전을 위한 제국 전권대사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이미 전세는 기울었고, 1945년 4월 30일 히틀러가 자살하자 괴벨스는 하루 동안 총리직을 수행한 후 아내와 여섯 자녀를 독살하고 자신도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괴벨스의 자녀(아들)

     

     

    괴벨스의 아이들은 나치 선전부 장관 요제프 괴벨스와 그의 아내 마그다 괴벨스 사이에서 태어난 5명의 딸과 1명의 아들이다. 1932년에서 1940년 사이에 태어난 아이들은 1945년 5월 1일 베를린에서 부모에 의해 살해되었다.

     

     

    독일어

    괴벨스(독일어: Goebbels, 문화어: 겝벨스)는 다음을 가리킨다.

     

     

    명언(어록)

    나에게 한 문장만 달라. 그러면 누구든지 범죄자로 만들 수 있다. 출처 불명의 가짜 명언이나, 괴벨스의 어록으로 자주 인용된다. 100%의 거짓말보다는 99%의 거짓말과 1%의 진실의 배합이 더 나은 효과를 보여준다.

     

    괴벨스의 가장 비극적인 연설은 바로 불리한 독일 전황을 바꾼 '총력전 연설' 이다. 선전 선동활동의 걸작이라고 불리기도 하지만, 이 연설문은 전쟁 위험이 있는 국가라면 누구든 인용할 수 있는 연설에 해당한다. 

     

     

     

     

    마무리:결론

    파울 요제프 괴벨스는 역사상 가장 악명 높은 선전 선동가 중 한 명으로, 그의 뛰어난 능력은 나치즘의 광기를 확산시키고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데 기여했다. 그의 삶은 선전과 선동이 가진 위험성을 보여주는 극명한 사례이며, 동시에 인간의 어두운 욕망과 광기가 어떤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비극적인 인물이다.